화창한 일요일 오후,
내가 왜 이렇게 베란다에 나와 서서 코앞의 도로를 바라보고 있는가 하면 이유는 단 한가지, 심심하기 때문이다.
이렇게 심심할 때면 왠지 시간이란 직선의 개념이 아니라 그 양끝이 연결된 원 같은 느낌이 들고,
아까 지나간 시간을 다시 한번 새롭게 보내고 있는 듯한 생각도 든다.
현실감이 없다는 표현은 어쩌면 이런 상태를 말하는지도 모르겠다.
이 화창한 일요일에 하고 싶은 일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.
그렇다고 뭐가 하고 싶으냐고 물어와도 좀 곤란하지만,
이를테면 지금까지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곳에서 지금까지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사람과
서로 부끄러울 정도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.
특별히 예쁜 여자가 아니어도 괜찮다.
예를 들자면.......그래, 나쓰메 소세키의 [고코로]에 나오는 선생과 K처럼 인생 혹은 사랑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 싶다.
단, 자살까지 하면 성가시니까 성격은 좀 낙천적인 상대였으면 좋겠다.
민달팽이처럼 달라붙어 있던 베란다 난간에서 떨어져 방으로 돌아온 나는
아직까지도 바닥에 그대로 깔려 있는 이불을 밟으며 거실로 나갔다....
요시다 슈이치의 퍼레이드중에서...